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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학

집에서 하는 우주 탐사: Zooniverse '갤럭시 주'로 은하 분류하기

1. 수십억 광년 너머의 질문: 인류 최대의 사진첩 '갤럭시 주'의 탄생과 의의

서울의 밤하늘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별은 고작 몇천 개에 불과하지만, 이 광활한 우주에는 사실 수천억 개가 넘는 은하(Galaxy)가 존재합니다. 각각의 은하는 수천억 개의 별을 품은 채 저마다의 독특한 모양과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슬론 디지털 스카이 서베이(SDSS)와 같은 현대의 천문 관측 프로젝트는 이러한 은하들의 사진을 하룻밤에도 수만 장씩 촬영해냅니다. 하지만 여기서 과학자들은 거대한 난관에 부딪힙니다. 인공지능이 은하의 밝기나 크기를 측정할 수는 있어도, 나선팔의 미묘한 형태, 중심부 막대의 유무, 다른 은하와 충돌한 흔적 등 복잡하고 비정형적인 패턴을 인식하는 데는 여전히 인간의 눈과 뇌가 훨씬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수백만 장에 달하는 ‘우주 사진첩’을 소수의 천문학자들이 전부 분류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시민 과학 프로젝트 중 하나인 ‘갤럭시 주(Galaxy Zoo)’가 탄생했습니다. 갤럭시 주는 전문적인 천문학 지식이 없는 보통 사람들의 패턴 인식 능력을 빌려, 수많은 은하의 형태를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우주의 거대 구조를 이해하려는 위대한 시도입니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 분류 작업을 넘어, 우주의 진화 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우주 인구 조사’이자, 인류가 함께 편찬하는 거대한 ‘은하 도서관’을 만드는 일과 같습니다.

집에서 하는 우주 탐사: Zooniverse '갤럭시 주'로 은하 분류하기

2. 나선은하인가, 타원은하인가?: '갤럭시 주'의 간단한 분류 과정과 의사결정 트리

갤럭시 주에 참여하는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며, 마치 잘 짜인 심리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프로젝트에 접속하면, 화면 중앙에 허블 우주 망원경 등이 촬영한 아름다운 은하 사진 하나가 나타납니다. 당신의 임무는 이 은하의 형태에 대한 몇 가지 질문에 답하는 것입니다. 모든 질문은 ‘의사결정 트리(Decision Tree)’ 구조로 되어 있어, 당신의 답변에 따라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가장 첫 번째 질문은 항상 동일합니다. “이 은하는 매끄럽고 둥근 형태이며, 원반의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까?” 만약 은하가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빛 덩어리처럼 보인다면 ‘예(Smooth)’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둥급니까?”와 같은 후속 질문으로 이어집니다. 반면, 뚜렷한 구조나 원반 형태가 보인다면 ‘아니오(Features or disk)’를 선택합니다. 그러면 “원반이 정면으로 보입니까?” 라는 질문이 나타나고, 만약 그렇다면 다시 “나선팔 구조가 보입니까?” 라는 질문으로 연결되는 식입니다. 나선팔이 있다면 몇 개인지, 중심부에 막대 구조가 있는지, 얼마나 촘촘하게 감겨 있는지 등을 차례로 답하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맞혀야 한다’는 부담감을 버리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원하는 것은 당신의 ‘전문가적 지식’이 아닌, 사진을 보고 느낀 당신의 ‘솔직한 첫인상’과 ‘최선의 판단’입니다. 만약 판단이 어렵다면 언제든 ‘도움말’이나 ‘현장 가이드’를 참고할 수 있으며, 모든 사진은 여러 명의 참여자에게 교차 검증되므로 당신의 작은 실수는 전체 데이터의 신뢰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3. '하니의 천체'부터 '그린피 은하'까지: 당신의 클릭이 만들어낸 위대한 천문학적 발견들

당신이 갤럭시 주에서 행하는 단순한 클릭은, 때로 천문학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네덜란드의 교사였던 하니 반 아르켈(Hanny van Arkel)의 발견입니다. 그녀는 수많은 은하 사진을 분류하던 중, 기이한 녹색 빛을 내는 정체불명의 천체를 발견하고 프로젝트 포럼에 “이 초록색 얼룩은 대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올렸습니다. 전 세계 과학자들의 이목이 집중된 이 천체는 연구 끝에, 지금은 활동을 멈춘 거대 블랙홀 ‘퀘이사’가 과거에 내뿜었던 빛이 주변 가스 구름에 반사되어 보이는 ‘퀘이사의 빛 메아리’라는,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천체임이 밝혀졌습니다. 이 천체는 그녀의 이름을 따 ‘하니의 천체(Hanny's Voorwerp)’라 명명되었고, 시민 과학의 잠재력을 전 세계에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시민 과학자들은 작고 동그라며 유독 짙은 녹색을 띠는 특이한 은하들을 발견하고 이들에게 ‘그린피 은하(Green Pea Galaxies)’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연구 결과, 이들은 폭발적인 속도로 새로운 별을 만들어내는 매우 희귀한 초기 우주 은하의 한 종류로 밝혀져, 은하 진화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했습니다. 이처럼 당신의 관찰은 단순히 데이터를 쌓는 것을 넘어,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우주의 비밀을 들추어내는 결정적인 ‘첫 번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습니다.

4. 천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탐험가: 당신의 관찰이 우주의 역사가 될 때

서울의 휘황찬란한 불빛이 밤하늘의 별들을 삼켜버린 도시의 밤, 우리는 갤럭시 주를 통해 그 어떤 천문대보다 더 깊고 넓은 우주를 탐험할 수 있습니다. 펭귄의 개체 수를 세는 것이 지구의 현재를 이해하는 일이라면, 은하의 형태를 분류하는 것은 우주의 근원과 역사를 이해하는 장대한 여정입니다. 이 여정에 참여하며 얻는 가장 큰 보상은, 아마도 수십억 년 동안 자신만의 빛을 내뿜어온 어느 은하의 모습을 인류 최초로 자세히 들여다보는 경이로운 경험 그 자체일 것입니다. 화면 속의 이미지는 누군가 찍어놓은 흔한 사진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 어딘가에 실재하는 천체의 민낯입니다. 그 모습을 마주하고 당신의 판단을 기록하는 행위는, 당신을 단순한 관찰자에서 우주의 역사를 기록하는 ‘현대의 탐험가’로 변화시킵니다. 펭귄 워치를 통해 시민 과학의 기본 원리를 익혔다면, 이제 갤럭시 주를 통해 당신의 지적 호기심을 우주적 스케일로 확장해 보십시오. 오늘 밤, 당신이 분류하는 이름 모를 나선은하의 데이터가 훗날 우주의 진화 모델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될지도 모릅니다. 우주가 던지는 수십억 년 너머의 질문에, 이제 당신이 답할 차례입니다.